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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장별서(美樟別墅)

가우건축사사무소

고성천(종합건축사사무소 시유재 대표)​
사진
윤준환
자료제공
가우건축사사무소
background

제주의 지역성에 대한 고민

 

제주에서 건축을 수행하는 이들에게는 지역성에 대한 강박관념 같은 것이 존재한다. 제주에서 나고 자란 건축가들에겐 더 그렇다. 제주 태생의 양건은 이 숙명 같은 지역성에 대해 천착하면서 지난 20년간 고향 제주의 지역건축가로 활동하고 있다. 1970~80년대 전통성과 모더니티에 대한 논의가 있었고, 1990~2000년대에는 지역성과 다양성에 대해 논의했었다. 21세기가 시작되고 20년 가까이 흐른 이 시점에 제주 건축이 추구해야 할 가치는 무엇일까? 나는 ‘새로운 지역성’이라고 생각한다.​ 신도리 주택 미장별서(美樟別墅)는 새로운 지역성을 담아내려는 중요한 작업이다.

 

 

제주 땅에 다가서기

신도리는 제주도 서남 측 지역인 서귀포시 대정읍에 자리 잡은 작은 농촌 마을이다. 이 지역은 제주도에서 가장 평탄한 지형을 이루는 곳으로 마을은 그 뒤편의 작은 오름 녹남봉에 의지하는 모습을 보인다. 이러한 지형적 특성은 한라산에서 바다 쪽으로 점차 낮아지는 지세를 따라 형상을 이루는, 제주 마을의 보편적인 모습과 사뭇 다르다. 양건의 작업은 이 마을의 경계에 위치하고 있다.

땅에서부터 출발한 우리 인간의 삶은 그 땅이 지닌 기운에 따라 삶의 터전을 만들고 건축을 이루며 마을을 형성해왔다. 녹남봉에서부터 내려오는 마을 공간과 골목길의 흐름은 신도리 주택으로 인해 연속성을 갖는다. 이 주택이 들어서기 전에는 내려오는 흐름이 경계 부분에서 흐트러졌지만, 이 주택이 건축되면서부터 결절점에서도 마을 공간의 구성이 이어진다는 게 확연하다. 건축주는 그래서 이 대지를 본인이 제주에 안착할 만한 곳이라고 여겼을 것이다.

 

 

세컨하우스 용도로 건축된 이 주택은 거실을 거쳐 작업실, 침실로 이어지는 공간 구성을 보인다. 건축가는 폴딩도어를 활용해 거실과 마당을 하나의 공간으로 엮어내려고 했다.

 

주택은 녹남봉에서 내려오는 지세를 주택의 공간으로 이어받아 넘긴다. 북측 안뒤를 통해 땅의 흐름을 받고 여러 기능을 소화하는 거실을 통해 그 흐름을 통과시킨다.

 

미장별서 둘러보기

이 주택은 녹남봉에서 내려오는 지세를 주택의 공간으로도 이어받아 넘기고 있다. 북측 ‘안뒤(제주 전통주거의 뒷마당)’를 통해 땅의 흐름을 받고, 여러 기능을 소화하는 거실을 통해 그 흐름을 통과시키며, 마당에 이르러서는 다시 자연과 조우한다. 그런 다음 집 앞으로 펼쳐진 마늘밭과 연결되며 땅의 흐름은 멀리 바다를 향한다. 마을의 지세가 이 주택으로 인해 단절되지 않고 이어지는 것이다. 땅을 존중한 건축가의 자세이자 해석으로 보인다.

신도리 주택에서 대지의 남동 측 코너에 배치된 취미실은 남다른 의미를 지닌다. 단순하게 보면 바다 전망을 감상하는, 건축주 자신을 위한 소박한 공간이다. 2층으로 계획될 법한데 이를 적층하지 않고 지면으로 펼쳐서 마당의 코너에 배치했다. 그 결과 주택 마당에는 위요감이 형성되었다. 이는 제주 전통 민가에서 읽을 수 있는 공간 구성이자 80년대 제주 주택의 창고와 ‘물부엌(다용도 공간)’으로 이어지는, 지역성을 지닌 건축이다. 일반적인 주택 마당이나 중정으로 둘러싸인 마당과는 다르다. 이러한 점에서 양건은 제주 전통 주거의 다용도 공간인 마당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했다. 제주성을 담아내며 새로운 지역성을 찾으려 한 시도로 보인다.

이 주택에서는 땅을 읽기 위한 노력뿐만 아니라 레벨에 대한 연구도 많이 이루어진 것 같다.​ 주택 내부공간으로의 진입은 지면에서 한 단을 높여 처리했는데 그 높이를 거실까지 유지했다. 거실과 마당을 폴딩도어를 통해 하나의 공간으로 엮어내려는 건축가의 의도가 보인다. 하지만 비바람이 거센 제주의 기후적 특성에 따른 디테일이 부족한 점은 아쉬움으로 남는다.

조경의 활용 측면에서도 아쉬움이 있다. 조경을 적절히 활용했다면 마당 남측으로 위요감을 형성할 수 있었다. 또한 이웃 간에 시야가 적당히 열리고 닫히면서 마당에서 마을 외곽, 바다로 이어지는 랜드스케이프를 통해 마을 경관 형성에도 일조할 수 있었다.

마지막으로 이 주택에는 부부욕실에 딸린 노천탕이 있다. 프라이버시를 위해 높은 벽이 세워지고 하늘을 향해 뚫린 공간이다. 사색의 공간으로 작동할 것 같다. 다만 마을의 원풍경이 주택 마당으로 이어지는, 이웃집과 다공적인 공간이자 시각적 여유가 있는 공간으로 디자인되었으면 어땠을까 하는 상상을 해본다.

 

​건축가는 마당의 남동측 코너에 배치된 취미실을 통해 주택의 위요감을 형성하면서 제주성을 담아내려고 했다.

 

새로운 지역성, 버내큘러 모더니티

미장별서를 사진으로 접했을 때는 백색 매스에서 느껴지는 오브제적 요소로 인해 마을에서 돋보일 것이라고 생각했었다. 답사를 하면서 이러한 생각이 기우였음을 느꼈다. 주택은 마을에 묻혀서 눈에 얼른 들어오지 않았다. 주택의 색상과 단순한 형태는 마을 주택들과 동질감을 갖고 동화되려는 결과인 것이다. 이렇게 형태와 스케일이 주변과 동화되면서 전체가 한 덩어리로 읽히는 매시브한 건축은 제주에서 흔히 보이는, 제주 건축의 원형인 돌창고에서 그 형태를 끌어낸 것으로 보인다. 형태적인 요소만이 아니라 내외부의 공간 구성도 제주 전통 주거의 공간적 구성 요소를 도입해 제주성을 불어넣었다. 그러면서 시대성으로 현대건축이 추구하는 최소의 건축을 담아냈다.

양건의 글 중 다음과 같은 문장이 있다. “유년시절 집에서 유일한 도피처는 좁은 계단을 오르는 물부엌 위의 옥상이었다. 그 위에 올라 바라보던 밤하늘의 별이 좋았다. 이 집에도 그런 공간을 담아내고 싶었다.” 건축은 여러 이론과 건축적 사고를 통해 형성되고 만들어지지만 우리 내면에 존재하는 감성도 이에 못지않게 영향을 준다. 특히 단독주택은 이성의 건축이라기보다 감성의 건축이다. 건축가는 그의 감성을 건축주의 이상과 잘 접목했고 그 결과 농촌과 도시의 중간적 삶을 제공할 수 있었다. 양건은 미장별서를 통해 제주의 지역성과 시대성에 대한 접근을 시도했다. 즉 제주의 전통성이 내재한 모더니티로 간결한 구축성을 추구하면서 새로운 지역성을 만들어낸 것이다. 이것이 우리 시대의 건축가들이 추구해야 할 새로운 지역성, ‘버내큘러 모더니티(vernacular modernity)’가 아닐까?​ <진행 이성제 기자>

 


 


▲ SPACE, 스페이스, 공간

설계

가우건축사사무소(양건)

설계담당

이경일, 고준석, 정립원

위치

서귀포시 대정읍 신도리

용도

단독주택

대지면적

393m2

건축면적

141.18m2

연면적

135.48m2

규모

지상 1층

주차

1대

높이

5.5m

건폐율

38.67%

용적률

37.11%

구조

철근콘크리트조

외부마감

스터코

내부마감

V.P도장, 포셀린타일, 원목마루

구조설계

지음구조기술사사무소

기계,전기설계

(주)한신이앤씨

시공

아키팩토리(김종민)

설계기간

2016. 6. ~ 9.

시공기간

2016. 10. ~ 2017. 8.

건축주

남정희

인테리어설계

유은정


양건
연세대학교 건축공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건축학 박사 학위를 취득하였다. 2006년부터 10년간 제주대학교 건축학전공 겸임교수를 역임하였다. 현재 가우건축사사무소를 운영하며, 제주특별자치도 도시계획위원을 지내고 있다. 다수의 작품으로 제주시 건축상, 제주특별자치도 건축문화대상을 수상한 이력이 있다. 최근작으로는 탐라문화광장 전망대 등이 있다.
고성천
중앙대학교 건축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건축학 석사 학위를 취득했다. 장건축과 무영건축에서 실무를 익힌 뒤 1999년부터 제주에서 (주)건축사사무소 시유재를 설립해 대표 건축가로 활동하고 있다. 대표작으로 신촌주택, 해조헌, 제주슬림호텔, 플로팅 카페 바다다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