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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say] 도시와 건축, 자연과 건축의 사이공간

유현준
사진
신경섭, 박영채
자료제공
유현준건축사사무소
진행
최은화 기자
background

©Park Youngchae


많은 비가 만든 사이공간 

유라시아 대륙의 동쪽은 계절풍의 영향으로 집중호우를 비롯하여 비가 많이 내린다. 반대로 유라시아 대륙의 서쪽은 일 년에 비가 1,000mm 이하로 적게 내린다. 강수량의 차이는 건축 구축 방식의 차이를 가져왔다. 서양은 최초의 문명 메소포타미아에서부터 벽을 세워서 건축하는 방식을 채택했다. 반면 동양은 장마철에 땅이 물러지니 무거운 벽체를 구조체로 사용하면 벽이 쓰러지는 문제가 생겼다. 자연스레 가벼운 건축재료를 선택해야 했고, 이는 목재라는 재료를 사용하게 만들었다. 서양에서는 벽을 세워서 건물을 짓다 보니 창문을 크게 낼 수가 없었다. 구조체의 벽에 창문을 크게 뚫으면 집이 무너지기 때문이다. 서양과는 달리 동양에서는 나무를 주요 재료로 사용하다 보니 건축의 구조가 기둥 중심으로 만들어지게 된다. 기둥과 기둥 사이에 있는 벽은 지붕을 받칠 필요 없다 보니 창문이 크게 뚫렸다. 이렇게 동양에서는 서양에서보다 자연스럽게 바깥 경치를 더 많이 보게 된다. 자연스럽게 동양의 건축에서는 안에서 바깥을 보는 것이 중요한 문화가 되었다. 나무 기둥이 비에 젖지 않게 하다 보니 처마가 길게 나왔다. 그리고 그 아래에는 툇마루를 만들었다. 이렇게 처마 아래에 툇마루 공간이 만들어졌다. 

처마 아래의 툇마루 공간은 내부도 아니고 외부도 아닌 중간적 성격의 공간이다. 극동아시아에서는 많은 비로 땅이 젖어있는 경우가 많으니, 집에 들어갈 때 진흙이 묻은 신발을 벗고 들어가는 문화가 자리를 잡았다. 신발을 벗고 대청마루를 통해서 방에 들어간 다음에, 다시 창문으로 나오면 툇마루에 앉을 수 있게 된다. 툇마루는 신발을 벗고 들어가고 비를 피할 수 있는 공간이라는 면에서는 실내 공간이다. 하지만 바깥바람을 쐴 수 있으니 외부 공간이기도 하다. 이 공간은 내부이기도 하면서 동시에 외부이기도 한 중의적 공간이다. 현대건축에서 이와 비슷한 공간을 찾는다면 발코니나 베란다가 이에 해당할 것이다. 1970년대에 들어서 급격하게 도시화가 되면서 한국은 도시형 주거를 개발해야만 했다. 철근콘크리트와 엘리베이터를 이용해서 만든 새로운 주거 형태는 아파트였다. 이때 만들어진 아파트의 각 세대의 평면도는 기본적으로 ㄷ자형 한옥에서 따왔다. 마당은 지붕이 덮여서 거실이 되었고, 바깥 공간과 접하는 창문 앞에는 툇마루 대신 발코니가 만들어졌다. 그렇게 20년 가까이 살았다. 그런데 그런 아파트에 침대가 도입되면서 변화가 생겼다.​

 

침대가 만든 발코니 확장, 사라진 사이공간​

​우리나라는 예부터 난방시스템이 온돌이다. 온돌은 아궁이에서 불을 때서 돌로 만들어진 방바닥을 데우는 방식이다. 이런 온돌방에서는 가장 따뜻한 곳이 방바닥이다. 그렇다 보니 솜을 넣은 이불을 방바닥에 깔고 자는 것이 가장 효율적인 수면문화였다. 반면 온돌 대신 난로를 주 난방으로 사용하는 유럽의 방에서는 더운 공기가 위로 올라가게 된다. 겨울철에 춥게 자지 않으려면 침대를 만들어서 방바닥에서 높게 띄운 상태에서 잠을 자는 것이 덜 춥게 잘 수 있는 방식이다. 우리나라처럼 이부자리를 침구로 사용하는 경우에는 아침에 일어나서 이불을 접어서 장롱에 넣으면 밥상을 들여서 그 자리에서 밥을 먹었다. 한 공간이 두 가지 기능을 하는 것이다. 그런데 1980년대 들어서 가사노동을 주로 하던 여성의 권리가 커지면서 이부자리를 펴고 치우는 일을 줄이기 위해서 침대가 도입되었다. 거실에는 4인 가족이 함께 TV를 앉아서 보는 소파도 생겼다. 침대와 소파는 집을 좁게 만들었다. 더 넓은 집이 필요해졌다. 이를 해결한 것은 발코니 확장이었다. 실외 공간인 발코니를 확장해서 실내화하면서 방의 크기를 키우고 가구를 편히 놓을 수 있게 되었다. 발코니가 사라지자 도시의 풍경이 삭막해졌다. 발코니는 고밀화된 도시에서 건축물과 도로 사이에 위치한 사이공간이었다. 이곳에 의자를 놓고 앉기도 하고, 화분을 놓고 키우기도 하고, 빨래를 널기도 하면서 건물 안 사람들의 삶의 모습이 건축물의 입면이 되게 하는 장치였다. 그런데 이러한 발코니가 사라지고 그 자리에는 유리창 벽이 서게 되었다. 공공의 공간과 사적인 공간 사이를 부드럽게 연결해주던 완충장치가 모두 사라진 것이다. 지금 이 도시는 마스크를 쓴 것 같은 건축 입면으로 꽉 차있다. 과거에는 건축과 도시가 전체적으로 투명성과 투과성이 많았다. 지금은 사라진 이러한 투명성과 투과성을 회복한 툇마루 같은 ‘사이공간’을 만들려는 시도가 이번 세 작품의 주요 콘셉트이다.​

 


©Kyungsub Shin

사용자가 완성하는 입면 

JJJ에는 도로에 접한 건축물의 입면 전체에 발코니를 적용했다. 그리고 발코니의 바깥쪽으로 세로로 된 가느다란 환봉으로 만든 반투명 느낌의 창을 달았다. 반투명 막과 같은 기능을 하는 이 스크린장치는 빛을 한번 걸러서 들여오고 바라보는 각도에 따라서 투명도가 바뀐다. 그리고 이 스크린은 전동식으로 조작되어서 열리기도 하고 닫히기도 한다. 건물 내부나 발코니에 앉아있는 사람들의 결정에 따라서 스크린이 열리고 닫히는 일이 결정되고 이 결정들은 모여서 건물의 입면을 완성한다. 건물 사용자들은 이 발코니에 앉아서 담소를 나누고 화분을 놓고 꾸미게 될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내부 사람들의 생활이 이 건축물의 입면을 완성하게 된다. 결국 사람들의 삶의 모습이 건물의 마감재가 되는 것이다. 발코니 공간과 건축 입면의 스크린장치를 통해서 건물 안의 사람과 도로 위의 사람은 대화 행위가 가능해졌다. 이 건물은 표정이 바뀌는 건물이다. 

이 디자인을 관철하기까지 가장 어려웠던 점은 허가권자인 구청 건축과와의 협의였다. 이유는 바깥쪽 스크린의 투명성이 확보되지 않았으니 사용승인 후에 실내로 전용해서 사용하려는 것이 아니냐는 의심 때문이었다. 기본적으로 우리나라는 건축설계자를 잠재적인 법규위반자로 규정하고 시작한다. 그렇게 시작하기 때문에 새로운 디자인이 나오지 못하는 경우도 많을 것이다. 예를 들어서 소우 후지모토의 하우스 N 같은 디자인은 지붕을 덮어서 실내 공간으로 점유하기에 너무나도 쉬운 디자인이다. 이런 디자인은 우리나라에서 허가가 거의 불가능하다. JJJ 발코니의 경우에도 허가권자에게 사용자는 발코니 확장을 하지 않을 것이라고 계속된 설득을 해야 했다. 문제는 스크린의 투명도였다. 구청에서는 내부가 훤히 보일 정도의 투명성을 가져야 한다는 것이었고, 나는 투명도가 높으면 교도소 창살처럼 보일 테니 그렇게 할 수 없다는 입장이었다. 결국 나중에 목업을 통해서 투명성을 증명하겠다는 조건으로 허가를 받았다. 실제로 디자인을 하면서도 스크린의 투명한 정도를 결정하는 일이 가장 어려웠다. 봉을 각진 사각봉으로 할 것인지, 환봉으로 할 것인지, T형 단면으로 할 것인지 등을 선택해야 했다. 사각봉이나 T형은 45˚ 각도에서 보았을 때 너무 막혀 보인다는 문제가 있어서 환봉을 선택했다. 봉의 간격과 굵기도 중요한 사항이었는데, 봉의 굵기는 바람에 흔들리지 않는 구조적 요인에 의해서 어느 정도 결정이 났다. 이때 고려할 사항은 봉을 만드는 철재 자체의 두께이다. 두께가 얇을수록 저렴해지지만 그러면 봉을 굵게 만들어야 한다. 이 두 요소 간의 적정 선에서 조정을 했다. 봉의 굵기는 동시에 봉의 간격에도 영향을 미친다. 수차례의 렌더링과 몇 가지 샘플 제작을 통해서 결정하게 되었다.​

 


©Park Youngchae

 

대청마루를 개방한 교회 

더 허그는 기독교 신앙을 가지지 않은 일반 시민들도 편안하게 교회에 들어올 수 있게 하자는 마음에서 시작한 작품이다. 전도를 하자는 교회의 건물은 역설적으로 문이 닫혀있고 들어가기 어려운 공간구조를 띠고 있다. 초대하는 교회 공간을 만들기 위해서 디자인을 입면의 곡률부터 시작했다. 일반적인 도시 속의 건물들은 평평한 입면을 가지고 있다. 평면과 곡면은 다르다. 만약에 건축물의 입면이 곡면이라면 곡면의 중심점이 위치하지 않는 바깥쪽에 서있으면 건물이 나를 밀어내는 느낌을 받는다. 반면 곡면의 중심점이 있는 편에 서있게 되면 나를 품어주는 느낌을 받게 된다. 이러한 느낌은 일상에서 우산 아래에서 경험할 수 있다. 우산은 현대 도시에서 즐길 수 있는 가볍고 저렴한 돔 공간이다. 돔 공간 아래에서 심리적 안정감을 느끼는 이유는 천장의 곡면이 나를 안아주는 느낌을 받기 때문이다. 그래서 과거 교회에서는 가장 경건한 공간에는 돔을 만들었다. 하지만 교회 예배당이 설교 중심으로 바뀌고 도심 속에 위치하게 되면서 더 많은 사람을 효율적으로 배치하다 보니 이러한 돔 건축은 사라지고 직사각형의 건물과 예배당만 남게 되었다. 이러한 교회 공간은 사람을 품어주는 공간이 아니다. 교회라면 소외되고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를 안아주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일단 교회 바깥의 외부에 있는 사람들을 품고 안아줄 수 있는 곡면의 입면을 만들었다. 거기서 그치지 않고 1층은 완전히 개방하여 사람들을 초대하고 공짜로 머무를 수 있는 공간을 만들었다. 이때 도로에서 카페로 들어가는 문은 교회를 다니지 않는 사람으로서는 선뜻 열기가 어렵다. 이러한경계를 완화하기 위해서 사이공간을 만든 것이 교회의 곡면 아래에 있는 처마공간 같은 작은 광장이다. 이 공간은 내부도 아니고 외부도 아니며, 교인을 위한 공간이면서 동시에 일반 시민을 위해서 열려있는 공간이다. 안으로 몇 발자국 들어오면 투명한 유리창으로 된 카페가 보인다. 이 공간은 누구에게나 열려있는 쉼의 공간으로 더 허그의 대청마루 같은 공간이다. 더 허그에는 기독교를 믿는 사람이건 교인이 아닌 사람이건 경계 없이 하나 될 수 있는 소통의 장이 1층에 만들어져있다. 

이런 디자인에서 중요한 점은 공공의 공간인 인도와 교회 앞에 조성된 처마 아래의 광장 부분의 재료가 같아야 한다는 점이다. 아무리 공간적으로 연속되어 들어와도 재료가 다르면 또 다른 경계선이 되기 때문이다. 재료의 선택에서는 선택의 여지가 없이 세종시에서 지정하고 있는 보도블록을 사용해야 했는데, 그다지 색상이 마음에 들지는 않았다. 그래도 다른 재료를 사용하는 것보다는 낫다고 생각하고 그대로 적용하였다.​

 


©Kyungsub Shin

 

바람과 사람과 골목으로 직조된 건물​

윈드 펜스의 대지는 땅과 바다가 만나는 경계에 있다. 이곳은 자연과 도시가 만나는 경계이기도 하다. 대지의 한쪽 면은 바다를 향해 있고, 반대쪽은 마을과 골목길을 향해 있다. 그래서 이 건물은 자연과 접하는 면과 도시와 접하는 면, 두 개의 입면을 가지고 있다. 우선 자연과 접하는 면의 입면을 통해서 보이지 않는 바람을 보이는 것처럼 만들고 싶었다. 형태적으로는 크리스토와 잔느-클로드의 작품에서 영감을 얻었다. 그들이 만든 대지 위에 설치된 긴 캔버스는 바람으로 한껏 휘어져 있고 이러한 형태는 시각적 긴장감을 준다. 바다 위에 떠있는 요트의 돛도 마찬가지 긴장감을 준다. 이처럼 바다를 접한 쪽에는 무거운 노출콘크리트 벽체가 바닷바람을 받아서 팽팽하게 휘어진 모양을 띠고 있다. 그리고 그곳에는 여러 개의 구멍을 뚫어서 그 긴장감 있는 벽을 통해서 내부와 외부가 소통하게 만들었다. 직선이 아닌 세 개의 곡면으로 구성된 바다 쪽 입면은 바다와 건축물이 ‘밀고 당기기’를 하는 모양새다. 

반대쪽으로 도시와 접하는 면은 건물을 여러 동으로 나누어서 건물과 건물 사이에 골목이 치고 들어오는 형식이다. 이런 건물 내의 골목은 최소한의 실내 면적을 통해서 최대한의 손님을 맞을 수 있는 공간을 만들려는 상업적 의도도 깔려있다. 각 동에 두 개의 외부 계단을 두어서 일반적으로 임대료가 싼 상층부도 지상과 연결된 느낌을 강화하기 위해서 설치했다. 이러한 외부 계단은 또 다른 수직형 골목길이다. 도시와 자연 사이에서 이 건물은 여러 개의 공간의 관통이 만들어졌고, 그 빈 공간은 사람으로 채워진다. 실내 계단이 아닌 외부 계단으로 처리한 이유는 가게에 돈을 내지 않은 지나가는 사람들도 데크에 올라가 볼 수 있게 하기 위함이었다. 이 건물은 바람과 사람과 건물이 씨줄과 날줄이 되어 복합적으로 직조된 공간의 건축물이다. 

이 대지의 앞에는 바위로 만들어진 멋진 바닷가가 있는데, 최초의 디자인에서는 대지의 축대를 잘라내고 계단을 만들어서 바다로 직접 연결되는 길을 만들려고 하였다. 이를 위해서는 해결해야 할 이슈가 있다. 우선 폭 1m로 전체 대지에 접해있는 축대는 해양수산부에서 관리를 하고 있는 부분이다. 이 부분은 정부로부터 구입은 어렵고 연간 사용료를 지불하면 축대를 고쳐서 사용 가능하다. 하지만 공사비를 절감하는 과정에서 토목공사량을 줄이기 위해서 바닷가로 가는 계단을 삭제하였다. 동측에 있는 2차 개발 부지와의 사이에 이 계단을 추가한다면 대지 후면부의 골목길과 바닷길이 이 건물을 통해서 이어지게 된다. 제임스 스털링의 슈투트가르트 뮤지엄은 건물이 도시의 높은 부분의 이면도로와 낮은 부분의 대로를 연결하는 장치로 디자인되어 있다. 이런 건물 디자인은 도시의 조직과 유기적으로 연결된 좋은 사례이다. 윈드 펜스에도 골목과 바다를 연결하는 계단이 완성되어서 그런 역할을 하기를 기대해본다.​ 

 


유현준
유현준은 홍익대학교 교수이자 유현준건축사사무소 대표다. 하버드 디자인 대학원, 매사추세츠 공과대학교, 연세대학교에서 건축을 공부하고 리차드 마이어 앤드 파트너스 아키텍츠에서 실무를 했다. 시카고 아테내움 아키텍처 어워즈, 독일 디자인 어워드, 젊은건축가상, 김수근건축상 프리뷰상, 대한민국공간문화대상 대통령상 등 국내외 다수의 수상 경력이 있으며, 다양한 저서와 칼럼, 방송으로 경쾌하고 쉬운 비유를 통해 건축 이야기를 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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